김성원 기자.

(부산=포커스데일리) 한반도 남쪽 끝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한려해상공원의 시발점이 되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라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봉황의 땅이요, 바람의 언덕과 학동 몽돌해변 해금강 등으로 일년 열 두달 관광객이 끊기지 않은 관광지요, 6.25전쟁 당시 포로들을 수용한 포로수용소가 있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이기도 하다.

이런 거제도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제도에는 지나가는 X개도 10만원 짜리 수표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 말이 회자됐었다. 개가 무슨 수표를 물고 다니느냐고 반문을 할 지 몰라도 그만큼 거제도의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비유해 나타내는 레토릭이었다.

이처럼 X개도 10만원 짜리 수표를 물고 다닐 정도인 거제도의 경제 호황 뒤에는 조선산업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돈이 돌고 돌아 활기차고 웃음이 넘치고, 전국에서 일 인당 소득이 둘째라면 서러워하던 잘나가던 부잣동네 거제가 이제는 빈집이 늘어나고 임대사업자들은 세입자들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없어 야반도주를 한다고 한다. 

영세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며 끙끙 앓는 소리만 내고 있고, 심지어 몇 대째를 이어 오던 가게도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모두 어두운 일굴을 하고 웃음을 잃은지 오래됐다고 한다.

그렇게 잘나가던 거제가  왜 이렇게 어둠의 도시로 변하고 주민들은 생활고에  허우적 대고 있을까.

이렇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산업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이 거제를 울고 웃게 만든 것이다.

비단 거제분만아니라 울산도 조선경기가 불황을 겪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 거두어 들일 세금이 없어 공무원에게 수당마저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웃지못할 소식도 들려 온다.

국가의 기간산업인 조선산업이 불황을 겪자 거제와 울산의 경제 뿐 아니라 국가경제가 엉망이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조선사업 활성화를 위해 대책을 내놓았다.

그 대책은 예산 5조5000억원을 들여 국가기관에서 발주하는 관공선을 조기에 발주해 조선소에 일감을 준다는 것이다. 5조5000억원 이라는 막대한 액수의 국민혈세를 투입해 조선경기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정부의 이 대책이 조선경기 활성화에 별다른 도움도 되지 못하고, 조선소가 도리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5조 5000억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혈세를 퍼붓고 있는데 정작 조선소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은 <포커스데일리>가 시리즈로 보도한 '관공선 발주의 뒷면'에서 알아보았듯이 '장비리스트'라는 전가의 보도를  손에 움켜 쥔 공공기관의 '갑질'에 있다. 공무원의 이런 '갑질'이 정부의 조선산업 활성화 방침에 역주행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관공선은 조선소가 80%대 선에서 입찰을 받는다고 한다. 그 다음 입찰받은 조선소는 입찰가격에 맞춰 선박에 들어가는 각종 기자재 가격을 조정해 통상 정해진 퍼센트의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기관이 선박에 들어갈 각종 기자재와 부품 등의 장비를 자기들이 선정한 부품을 사용하라고 억지하는데 있다.

이럴 경우 공공기관이 정한 부품업체는 조선소에 '갑'이 돼 부품가격조정은 커녕 선박 건조과정에서도 협조가 잘 되지 않는다고한다.

심지어 공공기관에서 정해진 부품업체와 고가에 부품을 조달하다보니 경영수지악화로 조선소가 부도나 다시 선박을 입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선소에서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선박을 발주받아 일을 해도 이익은 커녕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관공선과는 다르게 민간선박은 발주를 하면 모든 것을 조선소에 일임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완성된 선박에 하자가 있다든지 설계도와 다르게 건조됐다면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선박 인수를 거부한다고 한다.

그럼 왜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관공선만 유독 ‘장비목록’을 앞세워 정해준 부품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일까.  

"장비목록은 모든 비리의 시발점이요, 비리의온상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장비목록을 손에 쥐고 갑질을 행사한다"는 선박기자재업체 대표 A씨의 말에서 그 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그는 또, "장비목록이 이처럼 비리의 온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면 공공기관은 이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조선소에 돌려준 후 조선소에서 정하는  업체의 부품을 철저히 검증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수산과학원 책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관공선을 발주한 조선소가 선박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선소 마음대로 선정하게 해달라는 것은 이익을 많이 남기겠다는 의도"라며 "우리는 법대로 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그의 이같은 말에서 '발주받은 조선소가 적자가 나든말든, 나라경제가 엉망이 되든말든 우리와는 관계없고 우리 것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갑질'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의 인식을 대변해주는 것같아 아주 씁쓸하게 들렸다.

또 수산과학원에서 발주한 선박을 입찰받은 모  조선사 대표가 수산과학원 담당자에게 <포커스데일리>에 게재된 기사를 거론하며 조선소가 원하는 장비로 변경해달라는 요구에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수산과학원에 와서 관련기사가 잘못됐다고 인정을 하고 사과를 했다. 아주 혼쭐이 나서 돌아 갔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는 수산과학원을 방문하지도, 그 담당자와 통화하지도, 기사가 잘못됐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이처럼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들이 정한 선박부품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공무원들의 이런 '갑질'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국민의 혈세로 조선업을 살린다며 어마어마한 돈을 퍼다부어도  조선산업 부활은 요원한 것 같다.

김성원 기자  ulruru5@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